9/20 학회 모임이 아쉽게도 무산된 상황에서 운영진 형들과 경정 선배 관승이 형, 이렇게 4명이 늦은 저녁, 간단한 맥주 타임을 가졌다.

관승이 형은 우리과 선배로써 ms인턴을 1년 진행하고 나서 끝 무렵에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받아 많은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온 선배였다. 덕분에, 매번 책으로 보고 동경만 해오던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를 직접듣게 됬는데 너무나 가슴뛰었고, 지금도 그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관승이 형이 해준 많은 이야기들 중에 나는 기업 문화 부분을 조금 더 다뤄보고자 한다.

현재 국내의 기업문화는 많은 지적을 받고 있고 실제로도 그 한계가 글로벌한 경쟁상황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의 경영진들은 부랴부랴 스타트업에 눈을 주고, 저들의 문화, 실리콘밸리의 문화형태를 기업에 입히게 된다. 기존의 수직적 프로세스와 반복 숙달적이고, 통제적인 기업문화에서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기업문화를 들여오게 된 것이다. 삼성의 후계자이신 그 분의 발언대로 삼성에선 셀 단위의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그 외에도 sk나 lg같은 기업들도 스타트업 문화를 도입하게 된다.

여기까지 너무나 좋은 현상이다.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비자율적, 수직적, 통제적 문화가 그들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문화란 걸 깨달은 부분까지는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한 문화를 한국에 들여왔을 때,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쉽게 생각해서 인터넷에서 모델들이 입고 핏이 쫙 나오는 옷을 키 167의 내가 입는다고 해서 정말 주변의 여자들이 뻑가게 하는(얼굴이 받쳐주지는 않지만) 핏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굳이 답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답은 '아니오'다. 아무리 멋진 옷인들 내 몸사이즈와 맞지 않고, 내가 입고 다니는 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아름다운 핏을 낼 수 없는데 하물며 기업문화도 다르겠는가.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정말 나도 일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러한 조직문화를 백날 가지고 와야 그것이 한국의 기업문화와 잘 맞을 수 있겠는가.

분명 대기업들이 지금 하고 있는 스타트업 문화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을 로컬라이징, 즉 현지화가 되는 과정없이 무작정 수용만 하게 된다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다름없다. 패션이란 것도 그렇듯이 하나의 문화가 정착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옷에 몸을 맞출 수 없다. 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키가 167인데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180들이 입는 청바지를 입을 수 없다. 멋진 스타일의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닌, 그 스타일의 옷을 내 몸에 맞게 변형시켜 입을 수 있어야 한다. 형들이 보아왔던 국내의 기업들도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현지화 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대다수의 기업들은 그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이전의 문화로 회귀하는 일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문화에는 미국인들의 삶의 태도가 들어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사고방식에는 벌써 큰 차이가 있다. 실리콘 밸리의 젊은 인력들에 대해서 기존의 미국사회는 어리다고 깔보는 것이 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해준다. 득현이 형님 말대로 한국에서 회사간 미팅에 나가면 사장대 사장의 미팅이 아닌, 젊은 것들이 멋모르고 까부는 것으로만 본다고 한다. 업무환경에 있어서도 한국은 정해놓은 틀을 만드는 것에 강박적으로 시달린다. 그 틀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 틀을 만들어 놓는다기 보다 큰 대원칙하나 아래 움직인다. 이렇한 원칙은 한국의 규칙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룰이 아닌, 두루뭉술한, 필수요소 중심인 룰 안에서 파생되어 나오게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만들어진 문화인데 이것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다보니, 기득권들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문화로 옷을 입기도 전에 갈등만 야기한다.

여기에 우리는 중국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득현이 형님의 미국 생활 시절, 만난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프라이드가 높다고 했다. 영어로 물어도 중국어로 대답할 정도, 거기에 고등학교 안에서도 중국인들은 유독 끈끈히 뭉쳐다녀서 만나면 괜히 무서워질 정도였다니, 이들이 중국에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는 정말 높이 살 만하다. 이들은 거기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를 특이하게 받아들였다. 실리콘밸리가 0 to 1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들은 1 to 100로 로컬라이징했다. 강한 위계질서가 주는 빠른 속도전을 가져가면서 다양한 부서가 섞여 일을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흡수해 더했다. 결국 이들은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엄청난 기업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모델들의 옷을 167에 맞게 스타일을 변형시켜 입어 만들어낸 결과였다. 0 to 1이 어려운 것을 파악하고 재빨리 1 to 100로 포지셔닝하고 거기에 문화의 결합을 통해 굴지의 기업들을 만들어 버렸다. 이들이 단순히 중국방식으로만 접근하거나, 기존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무시한 채 문화를 도입하기만 했다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실리콘 밸리의 문화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현존하는 답중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은 맞다. 그러나 완벽한 정답은 아니기에 무조건적인 도입은 억지로 끼워 맞추며 그에 따라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기업들이 풀어야할 과제는 기업 문화를 바라보기 보다, 더 나은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로컬라이징, 현지화 할 것인가를 풀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문화틀에 융합시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모든 변화는 급격하게 이뤄질 수 없다. 기존의 축적된 경험이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일뿐,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다.

-이 날, 같이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러한 인사이트를 준 득현이 형님, 관승이 형, 현일이 형에게 너무나 고맙다. 정말 이 형들을 만날때면 그 자리만으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어 너무나 좋다.

Posted by 타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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